아직 표지 완성 전이라 일본판 표지를 살짝 빌려왔습니다~
다음 발행예정작은 가노 도모코 作 '나선계단의 앨리스' 입니다.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작가입니다만, 손안의책 일동이 모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정적인 미스터리라고나 할까요. 읽을 때는 흥미진진하고, 읽고 나서는 왠지 따뜻한 기분에 미소짓게 되는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형식은 '샤바케' 나 '집지기~'와 비슷한 옴니버스식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맨 첫번째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길이 관계로 오늘부터 매일 한 챕터씩 나눠서 이글루에 올릴게요.
(교정 전 파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보아 주세요~)
대강의 줄거리
30년 동안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 니키 아저씨는 옛날부터의 꿈인 탐정 사무소를 개업합니다. 하지만 의뢰인은 하나도 오지 않고, 사흘째 사무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니키 아저씨는 그만 책상에 얼굴을 박는 현장을 마침 찾아온 소녀에게 들키고 맙니다. 고양이가 비상구의 나선계단을 올라가 버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따라 올라왔다는 소녀. 자기 이름이 아리사라고 밝힌 소녀는 이 손님이라고는 없는 탐정의 조수가 되겠다고 자청하는데, 때마침 첫번째 의뢰인이 찾아옵니다. 1
니키 쥰페이는 달팽이 꿈을 꾸고 있었다.
달팽이라고 해도 있는 장소가 꿈속이라 보통 크기가 아니다. 소용돌이 모양의 껍데기는 크기가 이층집만큼이나 된다. 당연히 몸통 쪽도 전철 차량 정도는 족히 된다. 그런 괴물 같은 녀석이 기분 나쁘게 미끌미끌 번쩍이는 몸을 질질 끌며 집요하게 쫓아온다. 그런 꿈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적은 달팽이다. 그렇게 재빨리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튼 집념이 강하다.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고, 집요하게 쫓아온다. 숨은 이미 옛날에 차올라 버렸고, 심장은 폭발하기 직전이다.
(이제, 아무렇게나 되라지.)
그런 자포자기한 기분이 되었다.
역시 아무렇게나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고친 것은, 꿀꺽 삼켜진 후의 일이었다. 자그마한 니키의 몸은 소용돌이 모양의 껍데기 안을 빙글빙글 돌며 떨어져 내려간다. 떨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소금이라도 쳐서 먹지.)라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달팽이에게 잡아먹히다니…. 인생을 끝내는 방법으로서 이것은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오히려 자랑할 만한 사실일까. 고작해야 반세기. 그렇지만 반세기. 먼 옛날 같으면 향년 오십은 호상일지도 모르지만, 요즈음은 이제 막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나이이다. 그러나--.
“뭐, 상관없나.”
니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문득 웃었다.
기묘한 체념도 있었지만, 머리 한 구석에서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몸은 빙글빙글 돌며 떨어져 내려간다.
드디어…….
털썩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니키는 얼굴을 호되게 부딪쳤다. 이상한걸, 달팽이 위장이 이렇게 딱딱하다니……?
간신히 눈꺼풀을 뜬 니키는 책상에 부딪친 콧등을 어루만졌다. 자기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깜박 졸아버린 듯하다. 데스크워크를 하고 있는 인간에게 4월의 햇볕은 세이렌의 노랫소리다.
진한 만데린이라도 끓일까 하고 일어나려던 순간, 갑자기 네 개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비상구 창문 너머로 검고 커다란 눈동자 한 쌍과 아몬드 형의 금색 눈동자 한 쌍이 나란히 위아래로 눈꺼풀을 깜빡깜빡거리고 있다.
비상구 문 너머에는 고양이를 안은 소녀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 17, 8세 정도 되었을까. 벚꽃색 원피스가 무척 잘 어울린다. 고급 소녀복 카탈로그에서 빠져나온 듯한 미소녀다. 머리 꼭대기에 커다란 리본을 묶고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로우 웨스트 스커트가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뭔가 바스락바스락하는 마른 소리가 났다.
상대는 니키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며 애교있게 미소지어 보였다. 양볼에 움푹 보조개가 생긴다. 거품을 낸 생크림을 스푼 끝으로 살짝 떠낸 듯한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손님 치고는 묘한 곳에서 나타난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자, 녹슨 경첩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니?”
이곳은 어뮤즈먼트 파크도, 유원지도 아니다. 부산스러운 번화가 한편의 낡은 상가 빌딩 2층이다. 소녀가 올라온 비상용 나선계단은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지고 붉은 녹이 슬어 있다. 풍성한 밤색 머리칼을 바람에 나부끼는 눈앞의 소녀와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었다.
“죄송해요. 고양이가…….”
소녀는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고양이?”
니키는 조금 당황하며 소녀가 무거운 듯이 안고 있는 고양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잘 보니 하얗고 긴 모피를 가진 고저스한 분위기의 고양이다. 고급 애완동물 사료 광고에라도 나올 것 같다.
“이 아이도 참, 계단을 멋대로 막 올라가 버렸거든요. 그랬는데 마침…….”
“창이 있어서 들여다봤다는 건가. 뭔가 즐거운 경치는 보였니?”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지만요.”
우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이 쿡쿡 웃었다. 졸다가 책상에 얼굴을 부딪친 순간을 확실히 본 듯하다.
니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턱을 어루만졌다.
그 때 뭐가 기분에 거슬렸는지, 문득 고양이가 버둥거리더니 소녀의 팔에서 뛰어내렸다. 쿵, 하고 고양이답지 않은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에 착지하곤 유유히 니키의 앞을 가로질러 방구석으로 걸어간다.
“아, 얘, 안된다니까.”
소녀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늦어, 사무소 벽에는 고양이 발톱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
“죄송합니다.”
풀이 죽은 소녀에게, ‘뭐 상관없어’ 하고 니키는 대범한 면을 보였다. 어차피 오래된 임대 사무실이다.
“이 아이, 다이나라고 하는데요, 장난이 심해서.” 소녀는 고양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거 아세요? 다이나라는 건 앨리스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 이름이거든요.”
“앨리스라니,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예에. 그리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하고요.”
“그렇다면 주인인 너는 앨리스 리델이겠구나?”
루이스 캐롤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했던, 옛날에 실제로 살았던 소녀의 이름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름은 앨리스와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한 글자 다르거든요. 아시겠어요?” 수수께끼를 내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요, 아리사라고 해요. 이치무라 아리사. 친구들은 모두 아리사라고 불러요.”
소녀는 방긋 웃고, 그리고 무척이나 천진난만하게 되물었다.
“아저씨는요?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거예요?”
“나 말이니? 나는 말이다…….”
니키는 우물거리다 콧등을 긁었다.
그것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어차피 사무소를 열고 나서 단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상대가 어린 여자아이인 것이 이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니키는 마치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고 그래도 아주 조금 가슴을 펴며 말했다.
“--실은 나는 말이야, 사립탐정이거든.”
------------------------------------------- (내일 계속됩니다~)